비 피하려는 국민들, 우산 빼앗은 정부
내집 마련 원하는 사람 많은데
돈줄 옥죄며 주거비 부담 키워지난해 정부는 “빚 내서 집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지난 한해 동안 집 살돈을 못 구해 애를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 집 살이’를 원하는 이들은 계속 느는데, 정부가 돈줄을 옥죄면서 주거비 부담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7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2.8%가 ‘내 집을 꼭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층에서 더 절실해졌다.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도 ‘주택구입자금 대출(30.1%)’을 꼽았다. ‘전세자금 대출지원(18.7%)’과 ‘월세 지원(10.4%)’을 포함하면 국민 10명 중 6명이 금융과 지원을 통한 주거안정을 원했던 셈이다.
‘형편에 맞는 집을 사라’는 정부의 구호는 공허했다. ‘오늘의 집값이 가장 싸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청약시장 쏠림이 심화했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가릴 것 없이 매수 행렬은 길어졌다. ‘로또청약 단지’와 ‘천만 청약설’ 등 용수철 효과도 두드러졌다.
자가보유율은 소폭 상승(59.9%→ 61.1%)했지만,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은 강해졌다.
지난해 가구 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비율(PIRㆍPrice Income Ratio)은 중위수 기준 5.6배로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수도권은 6.7배로 광역시(5.5배)와 도 지역(4.0배)보다 높았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수요가 집중된 지역을 규제하면서 정부가 그 가치를 인정한 모양새가 됐다”며 “이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고, 대출 규제가 더해지며 결국 실수요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였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과는 달리 내 집 마련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청년과 신혼부부 등 주거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은 팍팍했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ㆍ신혼부부의 자가점유율은 각각 19.2%, 44.7%였다. 청년 대부분은 월세(71.1%)에, 신혼부부는 절반 이상이 전세(67.8%)에 살고 있었다. 이들 모두 임대료나 주택매매자금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부는 지난해 8ㆍ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과천ㆍ세종ㆍ분당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60%에서 40%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50%에서 40%로 각각 낮췄다. 올해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소득으로 따져 대출한도를 정하는 신DTI가 도입되면서 자금 운용의 폭은 더 좁아졌다.
고강도 규제에 집값은 잠시 주춤한 상태지만, 상승세는 여전하다. KB부동산 시세 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15년 12월을 기점으로 현재 103.7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수요가 집중된 서울은 작년 부동산 대책에 앞서 뜀박질을 시작해 114.4로 올랐다. 대출하도가 줄어든 가운데 집값이 오르면 서민들의 내집마련은 더 힘들어진다.
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