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9·5 부동산 대책’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대구시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시장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투기과열지구에서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가 각각 40%로 낮아지고,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금지, 청약규제 강화, 분양권 전매제한 등 전방위 규제가 적용된다.그렇다면 약 100일이 지난 현재 두 지역의 집값은 과연 정부의 기대대로 안정됐을까. 땅집고가 취재한 결과, 분당구와 수성구 집값은 오히려 더 뛰었다. 심지어 일부 아파트 단지는 이전 최고가격을 뛰어넘는 상승세를 보였다.
분당구는 리모델링 연한이 다가온 아파트 중심으로 투자 수요와 이른바 갭(gap)투자가 유입되면서 집값을 끌어올렸다. 수성구는 학군 수요가 꾸준히 받쳐주고 있다.
다만 거래량은 두 지역 모두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거래 없는 상승세는 비정상이자, 살얼음판 장세 같은 것”이라며 “상승세가 오래가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9·5 대책 100일, 질주한 분당·수성구
9·5 대책 이후 분당구와 수성구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은 전국 평균은 물론 수도권도 앞질렀다. 투기과열지구란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웃듯이 상승폭을 더 키운 것이다.1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9월 4일~12월 11일까지 약 100일 동안 분당의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04%, 수성구는 1.52% 각각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은 수성구와 동일한 1.52%, 수도권은 0.81%, 전국은 0.2% 오르는 데 그쳤다. 지방은 0.4% 하락했다.
분당은 리모델링 아파트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유입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4단지 66㎡(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6억5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이전 최고가격을 넘어선 것이다. 9·5 대책 이전과 비교해도 1000만원쯤 오른 것. 또 다른 리모델링 단지인 야탑동 매화마을1단지 59㎡도 지난 10월 4억5000만원으로 해당 면적 최고가를 기록했다. 역시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전보다 2000만원가 정도 뛴 금액이다.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호재가 없는 분당의 일반 아파트들도 상승세다. 수내동 파크타운롯데 131㎡는 지난달 9억2000만원에 거래되면서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전보다 2000만원 안팎 상승했다. 구미동 까치마을롯데선경도 70㎡와 84㎡가 각각 9·5 대책 이전보다 3000만원가량 높은 금액에 거래됐다. 구미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 연한이 다가오면서 투자 수요가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도 대책 이후 집값이 상승세다. 수성구 수성동3가 롯데캐슬수성2차 184㎡는 지난달 12억8000만원에 팔렸다. 해당단지의 역대 가장 높은 실거래가로 올 8월보다 1억원 뛰었다. 범어동 우방범어타운 84㎡도 9·5 대책 전보다 1000만~2000만원 오른 5억1000만원에 실거래됐다.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분당은 주거 환경이나 학군은 좋지만 판교에 밀려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올랐다”며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는 갭투자 수요도 들어와 9·5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자사고와 특목고보다 일반고에 힘을 실어주기로 하면서 학군의 중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며 “학군 우수지역으로 꼽히는 수성구뿐만 아니라 서울 양천구 목동, 광진구 광장동도 이번 정부 들어 강세를 보인다”고 했다.
■거래량은 많지 않아 ‘살얼음판’ 장세
분당구와 수성구 모두 집값은 올랐지만 살얼음판 장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매매거래량이 9·5 대책 이후 급감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분당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6월 1305건에서 7월 1477건, 8월 582건, 9월 552건, 10월 382건으로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성구도 6월 899건에서 7월 1363건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10월엔 300건까지 줄었다. 두 지역 모두 최고점과 비교하면 4분의 1 에도 못 미치는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다.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들은 “거래가 뚝 끊겼다”고 입을 모은다. 수성구 수성동3가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문의가 거의 없어 적막강산(寂寞江山)이 따로없다”고 했다. 분당구 정자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도 “9·5대책 이후에는 매수 문의가 하루 1~2건도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거래량 증가가 없는 상승세는 오래가지 힘들다고 분석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수요가 줄었는데 집값이 오르는 건 수요보다 공급이 더 줄었다는 뜻”이라며 “매물이 없으니 1~2명이 사도 가격이 오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거래가 동반되지 않는 시장은 구조적 허약 체질”이라며 “지지선이 튼실하지 않아 여차하면 흘러내릴 수 있는 살얼음판과 같다”고 지적했다.
안명숙 부장도 “매물이 대부분 회수되다 보니 거래가 줄어도 집값이 오르는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딱히 호재가 없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상승세가 점차 수그러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