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빙하기 5년 4개월만에 최대폭 하락
2018-12-24
정부의 온갖 규제에도 떨어지지 않고 버티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본격적인 하락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은 한두 달 사이 수억원씩 호가가 떨어졌고, 강북 신축 아파트들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 피로감이 쌓인 데다 정부 규제와 3기 신도시까지 더해져 매수자가 사라졌다”며 “한동안 침체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울 아파트값 5년4개월 만에 최대폭 하락
2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 일주일 동안 0.08% 떨어졌다. 2013년 8월 12일(-0.12%) 이후 가장 큰 주간(週間) 하락폭이다. 한국감정원은 “정부 규제와 거래량 감소,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서울 아파트 값은 6주 연속 떨어졌다. 2014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2주 이상 연속으로 떨어진 사례는 최근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8·2 대책 발표 후가 유일하다. 당시도 5주 동안 내리다가 반등했다. 거래량 역시 8월 1만4986건에서 9월 7222건으로 급감했고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많이 내렸다. 9월 초 19억1000만원에 거래됐던 잠실주공5단지 전용면적 76㎡는 지난달 17억3750만원에 팔렸다. 지금은 17억2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올해 9월 초 18억5000만원에 거래됐고 호가(呼價)는 19억원까지 치솟았지만 10월에는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현재 호가는 16억원으로 떨어졌지만 팔리지 않고 있다. 대치동 D공인 관계자는 “9월 초까지만 해도 호가를 조금만 낮추면 사겠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매수 문의 자체가 없다”고 했다.
강북 아파트도 많이 올랐던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중심으로 떨어지고 있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4단지 전용 59㎡는 실제 거래가격이 8월 10억7000만원에서 지난달 10억3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성동구 옥수파크힐스 전용 59㎡는 9월 12억원이던 실거래가가 이달 11억원으로 떨어졌다.
◇”반등 어렵지만 새집 부족·토지보상금은 변수”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이 당분간 8·2대책 이후처럼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과 세금규제로 수요를 억제한 데 이어 3기 신도시 등 공급대책까지 나왔기 때문에 서울 집값은 한동안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새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집값을 다시 자극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2만7034가구인 서울 새 아파트 입주가 내년 5만2341가구, 후년 4만1314가구로 늘어난다. 이 아파트 대부분이 2016~2017년 인허가를 마무리 한 재건축 아파트들이다. 문제는 2021년 이후다. 올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과 안전진단 요건 강화 후 재건축이 사실상 올스톱돼 몇 년 뒤에는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새 아파트가 꾸준히 나와야 가격 안정이 지속되는데 공급이 갑자기 급감하면 다시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토지보상금도 변수다. 정부는 2020년부터 약 16조원을 들여 3기 신도시 토지 보상에 나선다. 2000년대 중반 판교신도시 조성 당시에도 토지보상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돌아가 서울 땅값과 집값 급등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 개발정보 업체 지존의 신태수 대표는 “다른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토지 보상금이 풀리면 결국 부동산으로 돌아간다”며 “수도권 땅값을 자극하고 집값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역시 이런 부작용을 막고자 현금 대신 땅으로 보상하는 대토(代土) 보상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