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두려워 말고 과감히 질러라
대출 두려워 말고 과감히 질러라
2018-09-10
부동산 투기 부추기는 사회
규제 의지를 뛰어넘는 구매 열기, 불패 신화 부추기는 강연회 성황
지난 1년간 서울의 집값이 5.26%가량 올랐다. 부동산 공급물량이 적어져서 가격이 오른다고 분석하는 이도 있고, 과도한 투기 열기로 수요가 많아져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이도 있다. 확실한 것은 부동산을 사겠다는 의지가 정부의 규제 의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9월 5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사무실을 찾았다. 여기서 ㅍ부동산업체 대표 ㄱ씨가 진행하는 부동산 강연회가 열렸다. 책상 20개에 40명이 앉아 ㄱ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50∼60대 여성들이 많았다. 캐주얼한 복장의 남성들도 10명 정도 눈에 띄었다. 강연회는 3시간가량 이어졌지만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모두 좌석을 지켰다.
ㄱ씨는 강연 중간중간 “정부와 서울시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여러분에게 투자할 지역을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강하게 비판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이 나온 것이다.
우선 ㄱ씨는 서울시의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부터 준비한 종합개발계획이다. 올 6월 지방선거에서도 박 시장은 균형발전 전략 공약으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정부가 투자처를 알려주고 있다”
ㄱ씨가 화면을 누르자 서울시 전체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 곳곳에 주황색, 하늘색, 연두색 원으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에 나온 3도심, 7광역중심, 12지역중심이 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53개 생활권 지구가 들어서자 서울 전역이 동그라미로 꽉 찼다. ㄱ씨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를 보세요. 이명박 전 시장 때 서울 온동네에 뉴타운 개발을 해서 집값이 많이 올랐죠. 이 지도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박원순 시장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지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계시는 겁니다. 어차피 부동산값은 한 번 오르면 잘 안 내려가요. 정부가 양도세 규제를 강화해서 거래를 줄이고 있는데 언젠가 부동산 거래는 다시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화면에는 ‘서울 개발호재 정리’라는 제목으로 서울시 개발계획에 언급된 지역을 정리한 표가 나왔다. 뒤쪽에 앉은 사람들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화면을 찍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셔터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고 나자 ㄱ씨는 “이따 충분히 찍을 시간 드리겠습니다”라며 강연을 이어갔다.
ㄱ씨는 진보·보수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 성향의 서울시장이 와도 부동산의 우상향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 시장의 2030개발계획은 박 시장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다.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수립됐던 개발계획을 박원순 식으로 수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로 개발계획에 포함되거나 제외된 지역이 있고, ‘도시재생’이라는 표현이 들어갔을 뿐 2006년 수립된 2020서울도시기본계획과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ㄱ씨는 현 정부가 투기지역을 선정해 강하게 대출규제를 하는 것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여러분에게 좋은 투자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새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가장 핫한 지역입니다. 투기지역의 부동산을 사면 값이 많이 오를 겁니다라고 정부가 알려주고 있는 거죠. 투기지역으로 지정이 되면 오히려 그 동네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투기지역 부동산을 사기 어렵다 싶으시면 투기과열지역, 그것도 어려우면 조정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곳을 보세요.”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에 빠진 이들
ㄱ씨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대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동산 강의를 수만 번 듣는 것보다 내 마음에 드는 곳을 직접 투자해보면서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은행이 왜 있나요? 은행은 돈 맡기라고 있는 데가 아니라 돈 빌리라고 있는 곳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ㄱ씨는 서울시 개발계획표 화면을 다시 띄웠다. 중간에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한 이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부동산 강연회에 등장한 서울시 지도를 자기 방에 붙여놓고 사는 사람도 있다. 강남역 인근의 직장에 다니는 이신영씨(가명·33)다. 올해 초만 해도 이씨는 성남시 분당구의 전세아파트에서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들썩인다는 기사를 몇 번 봤지만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7월, 이씨는 우연히 직장 선배가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게 된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보다 회사를 몇 년 더 다녔을 뿐 비슷한 생활수준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투자를 알게 된 이씨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씨는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또래들 중에서는 투자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주식투자는 물론이고 지난해에는 한 달 월급을 가상화폐에 투자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벌자는 생각보다는 투자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는 “반드시 돈을 벌겠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일단 그는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이해하고 싶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연이어 발표되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계속 오르고, 가까운 이들 중에도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이 나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유명 인터넷 카페와 네이버 밴드를 돌아다녔다. 구독자가 10만명이 넘는 유명 부동산 유튜버의 영상도 퇴근시간마다 반복해서 시청했다. 서울특별시 행정전도를 사서 방에 붙여놓고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하고 잠 들기 전에 한 번씩 보고 잠들기도 했다. 참가비를 내는 유료 강연회도 다녔다.
“정부가 투기꾼을 단속한다고 하고, 집을 여러 채 가진 이들에게 강한 세금을 매긴다고 하는데도 자꾸 집값이 올라간다. 내 일만 하기 바빴을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유튜브를 보거나 부동산 강연회를 가면 거기서 ‘왜 집값이 이렇게 오르는지’ 그들의 논리로 설명을 해준다. 물론 부동산 상승론자들의 말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만큼 속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또 찾기가 어렵다.”
이씨가 실제로 부동산 계약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유료 부동산 강연회였다. 8월 초, 이씨는 평소 다니던 부동산 카페에서 400명 정원의 유료 세미나 정보를 봤다. 공지가 올라온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남은 자리는 고작 5자리였다. 서둘러 이씨는 자신과 부인의 자리를 예약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동작구의 강연회장을 찾았다. 15분 정도 먼저 도착했지만 이미 맨 뒤의 2줄을 제외한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사실 강연 내용 자체는 평범했다. 다만 앞으로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400명이 다같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설레는 게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방에 있는 서울전도를 뚫어져라 살펴봤다. 서울 경계 안쪽에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도 경계선과 멀지 않은 곳에는 내가 살 집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경기도 과천시에 집을 계약했는데, 2주 만에 호가가 몇천만 원이 올랐다. 30년간 갚아야 할 대출금은 좀 골치가 아프지만 ‘미래의 나’가 잘 해줄 거라 믿는다.”
서울 전역의 부동산 인상으로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기도 한다. 여의도에 직장이 있는 전문직 김진호씨(가명·31)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 죽전역 인근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전세생활을 “남 좋은 일만 했던 4년”이라고 말했다.
4년 전 그는 전세금 1억5000만원에 실평수 12평짜리 빌라에서 살기 시작했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에야 달라진 집값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크기의 인근 빌라 전세금은 2억원 근처로 올라 있었다. 올라간 전세금을 맞출 상황이 되지 않았던 김씨는 비슷한 전세가의 영등포역 인근 빌라로 이사했다.
계약금 돌려주고 해지하기도
이번엔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인 올해 초부터 미리 주변 시세를 살폈다. 처음 입주했을 때에 비해 주변 아파트 가격이 1억원 이상 올라 있었다. 집주인이 김씨에게 전세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히 전세금이 오를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이사를 결심한 김씨 부부는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김씨는 “전세자금대출 등으로 이자를 매달 50만원씩 내는 데다가 전세금이 갑자기 오를지도 몰라서 매달 80만원씩 적금을 하고 있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살고 저축을 열심히 해도 결국 남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면 부동산 상승장의 막차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도 오르다 보니 계약이 파기되기도 한다. 올해 7월 김씨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인근의 20년 된 아파트를 5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0%를 내고 잔금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도저히 팔 상황이 되지 않으니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의 개인사정이라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결국 계약금에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그는 용인시에 있는 다른 아파트를 계약했다.
김씨는 계약 파기 며칠 뒤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매매가를 2000만원만 올려주면 다시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부동산 쪽에 화를 내며 왜 그러냐고 묻자 부동산은 중간에 다른 계약자가 매매가를 2000만원 올려 계약을 하려다가 잘 안된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니까 6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더라. 2000만원을 더 주고서라도 그때 계약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기가 그나마 전문직이라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마이너스 통장으로 전세금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 왔고, 현재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2억원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내가 전문직이라 대출이 많이 된 것 같고, 일반 사무직 친구들은 대출을 많이 못 받는 경우도 많더라. 전문직도 서울에서 밀려날 정도면 젊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내집 마련’하는 건 이미 불가능한 시점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1000만원 이하로 투자가 가능하다?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도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라는 유혹의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이씨가 소개했던 부동산 카페, 밴드 등에 가입해 봤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다양한 부동산 광고가 올라온다. 그 중 실투자금 1000만원 이하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광고에 나온 주소를 찾아가봤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 홍보관이었다. 여기서 ㄱ부동산업체가 내년 완공될 용인시 기흥구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하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상담실에서 만난 이는 ‘본부장’이라는 직함이 담긴 명함을 건네줬다. 본부장은 “지금 정부가 주택거래를 다각도로 옥죄고 있다. 주택에 투자하려면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규제를 피하면서도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지식산업센터는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린 곳이다. IT, 바이오 등 신기술기업들이 주로 입주한다. 본부장은 “지식산업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유망한 곳으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1000만원 이하 투자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본부장의 설명은 이렇다. 분양가가 4억원인 사무실 하나를 매입하려 할 경우 주택과 달리 대출규제가 없다. 그래서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식산업센터는 정부의 중소기업 세제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공급가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사후에 환급받을 수 있다. 초기 투자금에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제하면 실제 투자액은 1000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출이자의 경우에도 지식산업센터 입주기업의 월세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본부장의 설명이다.
본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투자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곳이다. “조건이 지나치게 좋아서 의심이 든다”고 하자 본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이미 조성된 지식산업센터를 보면 분양한 이후 못해도 평당 500만원 이상씩 가격이 올랐습니다. 정부 시책과도 딱 맞는 산업단지라 완공하고 2~3개월 이내에 입주가 다 될 걸로 예상됩니다. 일단 사장님이 입주업체로 사업자 등록을 하신 다음에 나중에 임대업을 추가하시면 매매하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ㄱ부동산 직원들은 자신들이 소위 말하는 ‘떴다방’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 직원은 “사실 분양현장에 가보면 조금 무서운 곳에 있다 오신 분들도 많이 보이고, 떴다방은 실체가 없다. 저희 명함에 적힌 주소에 회사가 있으니까 직접 오셔서 저희가 떴다방인지 정직하게 거래하는 곳인지 직접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목적으로 부동산 투자 상담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 투자할 만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정부가 규제하는 건 투기꾼이고 저희는 투자자입니다. 투자자와 투기꾼은 뭐가 다를까요. 내가 하면 투자자고 남이 하면 투기꾼입니다”라는 용산 오피스텔 부동산 컨설턴트 ㄱ씨의 말도 떠올랐다. 투자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이조차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의 유혹은 강렬했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정부의 ‘극약처방’이 있어야만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8년째 부동산 매매업을 해온 양희영 공인중개사(가명)는 “지금 시장엔 유동자금이 넘치기 때문에 강남, 여의도 집값을 잡으려 해도 다른 곳에 자금이 몰려가 집값을 올린다.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기 시작하면 집 없는 사람들도 돈 빌려서 집을 산 게 수십 년간 반복된 모습”이라며 “집값 인상보다 비싼 집을 여러 채 가질 때 발생하는 손해가 더 크다는 인식을 심어줄 정도로 강한 처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