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강제 수용 근간 흔들
강제수용 근간 흔들
2018-07-24
토지보상 첫 ISD 마포땅 보유 美시민권자 “토지수용가격 턱없이 낮다”…홍콩서 국제중재신청서 제출 패소땐 시장가격 이하 수용, 기존방식 둘러싼 논란 불가피…해외선 시장가·합의가에 수용 정부, 外人소유땅 전수조사…각국 제도 비교해 대책 마련
정부가 전국 각지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부동산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외국 토지 수용·보상 관련 절차와 우리나라 법령을 비교·연구하는 작업에도 들어갔다.
서울 재개발구역 토지를 보유한 한 미국 시민권자가 토지 수용 과정에서 보상금액이 너무 낮다며 국제소송에 나선 데 따른 조치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일선 각 지자체를 통해 ‘정비구역 내 외국인 소유 토지와 건축물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국토부는 재건축·재개발을 비롯해 주거환경관리사업,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현재 진행 중인 정비사업 전반에 걸쳐 외국인 토지 보유 현황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토지 수용·보상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외국 주요 나라 제도를 비교하는 연구에도 착수했다. 외국의 토지 수용 사전 요건과 절차, 보상액 산정 기준 등 제도 전반을 분석해 한국 제도와 부합성을 비교하고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같은 움직임에 나선 이유는 이달 초 한 미국 시민권자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한국 정부가 재개발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용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중재신청서를 홍콩국제중재센터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ISD를 제기한 첫 사례로, 대개 법인이 청구해온 ISD를 개인이 제기한 ‘이례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2013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 서 모씨는 2001년 남편 박 모씨와 함께 대지면적 188㎡ 규모 가정집을 33만달러에 샀다. 이후 이 지역 재개발사업조합이 2008년 포구에서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2012년 서씨 집을 포함한 일대가 재개발지구로 지정됐다.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는 서씨 부동산에 대한 보상금을 81만776달러로 매겼으나 서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보상금이 85만달러로 상향됐지만 서씨는 이 역시 ‘시장가격’에 미치지 못한다며 거부했다. 이와 별도로 조합이 서씨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부동산을 넘기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서씨는 한미 FTA를 근거로 이의 제기에 나섰다.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토지 등을 취득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12년 195.5㎢였던 외국인 보유 국내 토지면적은 작년 238.9㎢까지 22.2% 늘어났다.
게다가 ISD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같은 제3국 재판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국내 중앙·지방정부와 사법부에서 적법하다고 본 절차가 뒤집힐 위험이 있다. 향후 소송 결과에 따라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등장해 재개발·신혼희망타운 등 전국 각지 개발사업을 지연시킬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외국 토지보상 체계는 ‘시장가격’과 ‘협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국 토지보상 제도 전반을 흔들 가능성도 있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논문에 따르면 영국은 ‘손실보상 기준’에서 “개발사업으로 수용된 토지 손실보상 가치는 공개된 시장에서 매도인이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매매대금 상당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미국은 연방헌법 제5조에서 “정당한 보상이 없으면 공공의 사용을 위하여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없다”고 정의했다.
한 감정평가사는 “토지 보유자들 사이에서 ‘협의’가 아니라 ‘강제’가 동원된다는 인상이 있어 ISD가 우리나라 토지보상 체계에 끼칠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으로 체결되거나 개정될 해외 투자협정상에서 토지 수용·보상 관련 분쟁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대응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