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급감, 호가는 상승 … 서울 부동산 ‘힘겨루기’
10월 거래량 전달보다 절반 급감
아파트값은 오히려 0.26% 올라집 주인들, 노무현 정부 ‘학습효과’
매수자는 규제로 집값 하락 기대
주거복지 로드맵 내용이 변수 될듯
?
3658가구의 대단지인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이달 들어 성사된 매매 거래는 2건에 불과했다. 9월엔 9건이 거래됐다.
하지만 호가(부르는 값)는 크게 올랐다. 9월 거래된 84㎡(이하 전용면적)의
실거래가는 9억1500만원이었다. 요즘 최고 호가는 10억5000만원이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집주인들은 비싼 가격에 팔고 싶어하고,
매수자들은 비싸다고 생각하면 이내 포기한다”며 “영업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울 아파트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8·2 부동산 대책 등으로
매매 거래가 급감했는데도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일부는 오히려 강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942건으로,
지난해 10월(1만3467건)보다 70.7% 줄었다. 올해 9월(8652건)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아파트값은 9월엔 전달에 비해
마이너스 상승률(-0.01%)을 기록했다가 10월엔 0.26% 올랐다.
호가가 뛰면서 실거래가와의 차이가 억 단위로 벌어진 단지도 잇따른다.
“이 가격에 사거나 아니면 말라”는 식의 배짱 매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e편한세상 신촌’ 84㎡의 최고 호가는 11억원이다.
최고 실거래가인 9억4000만원보다 1억6000만원 비싼 가격이다.
국토부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이 단지는 지난 9월 3건이 거래된 뒤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
84㎡ 호가는 8억원 선으로, 8월 말 실거래가(6억8000만원)보다 1억2000만원 높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매도자와 매수자 간 힘겨루기가 극심한 장세라고 진단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집주인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호가를 올리거나 매물을 거둬들이는 반면, 살 사람은 각종 규제 여파에
집값이 내려갈 것을 기다리며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압박 등 정부 규제에도 일부 매도자가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8·2 대책이 힘을 못 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은 아직 주택보급률이 낮다.
매도자들이 서울 주택 매수 수요가 꾸준히 있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특히 재건축 분양권 등의 거래가 금지되면서 자금력이 있는 매수자들은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오래된 아파트나 역세권 신축 아파트를 찾는다.
이 때문에 이런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호가를 올리거나,
최소한 내리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학습 효과’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며
규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임기 동안 서울 집값은 50% 넘게 뛰었다(KB국민은행 조사).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당시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반대로
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본 투자자들이 이번에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거래 침체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규제와 금리 인상 등으로 매수세가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어서다.
하지만 집값 추이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일부에선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주거복지 로드맵’ 내용에 따라 일차적으로
매도자·매수자 간 줄다리기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본다.
로드맵에 담길 임대사업자 등록 인센티브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다주택자의 처분 매물이 쏟아질 수 있어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서울 매매시장은 불안정하다”며 “금리 인상이 현실화하고
대출·세금 규제 등까지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하면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의 추가 대책에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 같은
강한 규제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집값 상승세가 힘을 얻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보유세 인상 카드 등 규제책이 나오지 않으면
집값은 완만하게 오를 것”이라며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더라도
급매로 내놓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